Archive/페이지

Design of aniture - 20

2018. 7. 17. 04:35

20
관계와 조화

Superelipse

현대 건축 이론을 완성한 모더니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말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새나 박쥐의 날개 모양을 본뜨는 데 그치지 않고 공기에 뜨기 위한 문제와 해결책을 모색하며 나온 결실인 것처럼, 집 또한 사람이 살기에 필요한 문제와 관계를 알아내고, 그 해결책으로써 인간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르코르뷔지에는 그러면서도 “집은 우리를 에워쌈으로써 인간에게 적대적인 자연 현상과 떼어놓고, 우리에게 인간적 환경을 제공하면서 인간적인 경계여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이상적인 환경을 꿈꾸면서도, 우리가 당장 지내는 환경에서 나오는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해결할 조화로움에 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디자인으로 넘어가 보자. 디자인만 놓고 봤을 때는 모든 것이 온전한데, 사람이 사용하면서 이전에 보이지 않던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사람에게 이롭게 한다는 디자인 원칙은 디자인이란 개념이 생겨난 이후로부터—어쩌면 문명이 시작하고부터—지금까지 변치 않는 진리로 작용해왔다. 그 이로움의 기준이 어디부터냐에 따라 그 결과가 조금씩은 달라지겠지만, 사람, 곧 관계가 없으면 디자인 또한 없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르코르뷔지에가 주로 받는 비판은 기능적 이상에 따라 만든 건축물이 생활의 새 가능성을 열어준 데에선 대단한 업적이었으나, 예외 없이 조율한 환경이 실생활에서 행동을 제한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가능성을 묵인한다는 점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생명체고, 따라서 주변에 있는 작은 것에게조차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디자인 또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한 치 앞도 모를 만큼 다양하게 벌어지는 상황이 우리 삶이라면—또한 이상을 확실히 전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우리와 맞닿는 디자인은 그 의미에서 유기적이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 주변에 있는 물건들은 각각 어느 형태를 띠는가? 그 형태는 어느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인체와 맞닿는다면 그 형태는 어떻게 작용해야 옳은가? 또 그 형태는 어느 기억을 불러오는가? 결과적으로 그것이 현실과 미래를 꿈꿀 만한가?

'Archive > 페이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Design of aniture - 22  (0) 2018.07.17
Design of aniture - 21  (0) 2018.07.17
Design of aniture - 19  (0) 2018.07.17
Design of aniture - 18  (0) 2018.07.17
Design of aniture - 17  (0) 2018.07.17
icon-default icon-back icon-next icon-up icon-down icon-arrow-left icon-arrow-right icon-arrow-less icon-arrow-more icon-expand icon-collapse icon-dropdown-expand icon-dropdown-collapse icon-more icon-search icon-menu icon-close icon-plus icon-view icon-heart icon-comment icon-view-list icon-view-gallery icon-download icon-write icon-delete icon-send icon-lock-open icon-lock icon-external icon-logo-cactus icon-logo-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