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of aniture - 2
2018. 7. 17. 04:032
집
이제 새 삶이다. 새로움은 언제나 황홀하다. 나를 옭아맸던 불편함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내 삶은 없었다. 있었다면 막연히 안주한 현실이었고, 매일 돌아오는 오늘이었겠다. 그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겨울이 돼서야 잘 들었고, 오후 네 시 반이 지나면 점점 흐릿해졌다. 사실은 여름에도 밝았고, 겨울에는 특히나 밝았다. 오후 네 시 반이 되면 빛은 눈이 부시게 집을 채웠다. 하지만 그런 집에 들어온 빛은 청록색 몰딩이었고, 하얀 가구를 돋보이게 하려 붙인 까만 배경에 빨간 장미가 그려진 포인트 벽지였으며, 오래돼 해진 리놀륨 장판과 그 장판을 새로 바꿀 수 없이 가득한 가구들이었다. 그렇게 비친 집에서 내일은 보이지 않았다. 빛과 공간과 색은 계속 내게 말을 걸어왔지만, 그 말을 해석할 근본은 어딘가 방치되어 제각각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온 지 오래였다. 퇴색된 이야기는 깊이 생각할 이유를 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느껴진 말은 ‘이곳에서 나와 희망을 얘기해요’보다는, ‘이제는 작별해요. 당신은 새 희망을 얘기할 가치가 있어요’가 맞았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을 굴곡을 찾아다녔다. 상상하기 힘든 공간에서 굴곡은 삶의 일부분을 되새겨주는 역할을 하곤 했다. 이를테면,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장식은 인간의 균형을 짐작하게 하고, 돌을 깎는 데 들인 기술과 철학에 대한 경이로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새집 속 흰 벽지와 백색 조명, 마룻바닥은 내게 복잡한 이야기를 건네지 않았다. 해석할 게 많던 전 집과 달리 그것들이 있음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굴곡이 보이지 않는 새집은 내게 기억할 만한 것을 찾으라 말했다. 당장 가져온 짐은 일단 살라는 말밖에 외치지 않았으니. 새 삶, 새 집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정리할 것은 가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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