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그림

길형진 개인전: 사생화, 사생화 Flattening as Seen

2023. 9. 7. 00:41

길형진 개인전:
사생화, 사생화 Flattening as Seen

23. 9. 7. 목 –
23. 9. 24. 일
전시 포스터

AI 생성 이미지가 쏟아지는 오늘날, 개인의 무용담은 여전히 꽃피우고 느껴질 수 있을까. 효율과 자본을 위한 상품이 아닌, 공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사물로서의 가구를 만드는 스탠다드에이, 그리고 초타원형 디렉터이자 건축가인 정현과 함께, 사람만이 나타낼 수 있는 집념과 노력을 들춰 살펴보고, 서로 다른 작업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가능성을 찾아본다.

전시 전경

서문

효율과 자본을 위한 “상품”이 아닌, 공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사물”로서의 가구를 만드는 스탠다드에이(STANDARD a.). 지난 수 년간 스탠다드에이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공예품과 브랜드 제품들을 찾아, 가구와 곁들여 전시했습니다. 올해는 초타원형(SUPERELLIPSE)의 대표, 건축가 정현과 함께, 저희의 관심사를 그래픽 디자이너로 돌려 서로 다른 영역의 작업 과정 속에서 “접점”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전시는 길형진 작가의 개인전 《사생화, 사생화 Flattening as Seen》입니다.

PC통신과 코레일 전광판에서 쓰인 글꼴인 둥근모꼴을 현대화한 둥근모꼴+Fixedsys, 그리고 본고딕(Noto Sans KR) 글꼴을 플랫폼 환경에 적합하게 개선한 프리텐다드 등 익숙한 글꼴을 더 편하게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글꼴로 창안한 길형진. 내가 그를 처음 알게된 것은 우연히 검색해서 보게 된 그의 N서울타워(남산타워) 일러스트 때문이었다. 투박하게 건물의 외곽선과 구조의 궤적을 어도비(Adobe) 일러스트레이터로 한땀 한땀 따서 만든 것을 본 나는 그에게 N서울타워 일러스트의 이미지 사용권에 대해 물으며, 또다른 서울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서울을 담기 위한 나의 책 〈COPY CAT〉에 삽입하기 위해 의뢰했다. 건축, 디자인, 미술은 물론 정규 대학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길형진은 나의 부탁을 마다하지 않고 원고 마감까지 총력을 기울여 롯데타워 입면도를 완성했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프로젝트였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COPY CAT〉이라는 책 한 권으로 만드려는 시도에 맞춰 강남과 강북을 상징하는 탑을 책의 양쪽에 브로마이드로 끼워 넣는다는 컨셉은 사실 사진이어도 괜찮았고, 굳이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으로 어렵게 그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롯데월드타워는 길형진이 디자인하거나 만든 건축물도 아니다. “어떻게 해달라는 주문 사항도 없었지만, 해보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길형진의 〈공사 중인 롯데월드타워〉는 작가의 청춘의 한 부분을 소비했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었다. 수많은 사진과 저해상도 도면을 관찰하며 추측을 반복해야 했다. 2016년 1월 20일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후 대략 4개월이 넘는 사전조사가 필요했고, 첫 디지털 스케치를 시작하고 레이어를 얹으며 단 한 장의 그림을 디지털 도구로 완성하는 데 총 100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3D 프로그램이나 AutoCAD를 전혀 사용하지 못했던 그는 어도비 도구로 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평면 프로젝션 방식을 총동원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은 결국 마무리되었다. 비록 실제 일러스트 브로마이드는 책 크기에 맞춰 3단으로 접고 축소되어 아무도 그의 노력을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이후 그는 앞서 언급한 폰트 둥근모꼴+Fixedsys, 프리텐다드의 디자인을 비롯하여 원티드(Wanted)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게 되었고, 나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떤 커리어나 돈에 연연하지 않고 책과 일러스트를 만들던 시기의 여운은 나와 그에게 길게 남았다. 간단한 텍스트를 프롬프트 창에 기입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현실이 쉽게 그려지는 2023년 현재의 “AI 생성 이미지”에 비교하면 개인의 치밀한 집념과 고귀한 노력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진 인공물이지만 길형진이 말하는 과정과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작품들을 다시 바라보면 오히려 그림에서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건축과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긴 시간을 투자해 만든 평면 이미지들은 3D 프로그램과 인공지능에서 느낄 수는 없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를 쫓는 전통적인 사생화가 지닌 힘을, 그리고 개인의 일상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스탠다드에이와 나는 더 많은 이들과 도면의 역동성과 정확함을 전달하기 위해 구상과 구조라는 두 가지 요소로 양분하여 공간에 배치 하기로 기획했다. 또 위아래로 훑어보고, 서서 보고, 앉아볼 수 있도록 주변 가구와 연동하는 시퀀스를 고려했다. 모니터와 씨름하던 작가의 노력과 시선은 다양한 수종의 아름다운 나무 액자 속 크고 작은 그림들로 전환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그의 방과 모니터 속이 아닌 공간 속 가구 스케일로써 건축이 그려지는 과정을 새롭게 체감한다. 집중력이라는 말이 아무 의미도 필요도 없어진 시대에, 무용(無用)을 위한 개인의 강렬한 몰입의 결과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 다른 방식으로 담기게 된다.

글 정현

전시 사진, 액자 강조
전시 사진, 나란히 놓인 작품 2점
전시 사진, 액자 강조
전시 사진, 나란히 놓인 작품 3점
작품 확대 사진

전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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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

기획: 스탠다드에이, 초타원형
출력: 프린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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